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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용 세계와 공유 나설것"
글쓴이 : 화미주 날짜 : 2006-11-10 (금) 15:45 조회 : 3675

[밀양시민신문 9.15]

 

 

 

'한국 미용 세계와 공유 나설것'

 

  
미용업 세계화 도전 김영기 화미주인터내셔날 대표이사 
 
미용업의 국제화를 부르짖으며 야심찬 도전에 나서고 있는 밀양인이 ‘천만원의 약속’이란 책을 펴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밀양읍 용평리 출신 화미주(和美洲)인터내셔날 대표이사 김영기(47)씨다.
밀양초등(63회)․세종중 출신인 그는, 18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30여 년간 30여 가지 잡다한 잡무에서 부산 굴지의 미용업 대표로 성장하기까지의 사례담을 담은 ‘천만원의 약속’을 펴내 읽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부산시 광복동 구 미화당 백화점 맞은편에 서면 쉽게 ‘화미주 인터내셔날’ 간판을 만난다. 어쩌면 부산 최고의 번화가에 부산 최고의 미용업계가 위치해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찾은 그곳은 말 그대로 ‘헤어디자인 토탈 서비스 센터’였다.
2․3․4층 450여 평에는 화미주 20년의 노하우가 농축되어 만들어낸 ‘미용신화’의 현장이었다. 곳곳에서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를 내뱉는 90여 명의 직원들의 웃음 띤 해맑은 모습에서, 그리고 실내에 빼곡히 들어찬 고객들의 만족스런 모습에서 ‘화미주’의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어디에서 이런 프로마인드가 제공됐을까.
‘화미주’의 이런 분위기는 대표이사 김영기씨를 만나는 순간 어렵지 않게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기자와 처음 만난 그지만 그는 연신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웃음에는 가식이 없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얼굴 전체의 조화를 이루며 상대에게 온․냉의 향기를 전해 줬다. 이 가식 없는 웃음이 무언의 힘이 되어 화미주는 광복동 본사를 비롯, 울산과 부산 서면, 해운대 등 8개에 25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미용업의 대부로 성장한 원동력이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 김영기 대표이사 그는 누구인가 = 단장면 평리 출신인 그는, 모질게도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세종중 2학년 때 아버지가 간암으로 가사기 기울기 시작해 결국 17살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그는, 돈이 없어 아버지를 보냈다는 죄책감에 이러다 엄마마저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천만원을 5년내에 벌겠다는 다짐으로 방 사방에 ‘천만원’을 썼다.
이것이 이번에 출판한 책 이름의 원조다.
군대 입대 전 천만원을 벌기 위한 그의 처절한 노력은 친구들이 다 학교간 그 시간에 막노동 현장을 전전긍긍하며 시작됐다. 읍사무소(현 내일동사무소) 재건축 현장에서 대성농공사, 냉동사과 밀감장사, 신발장사, 삼랑진 양수발전소 공사현장, 심지어 양산 농공단지 조성공사장까지 30여 가지 일을 하며 그는 악바리로 돈을 벌었다.
그래서 군댈 가기 전 그는 1천만원을 모았다. 돈을 벌겠다며 이런 막노동에 전전긍긍했던 그의 행동과 모습은 어느새 거칠대로 거칠어 남에게 부담을 주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군대 제대 후 부산에서 가발 겸 미용업에 종사하다 지인의 도움으로 커피숖을 운영하던 그는 처음엔 하루 커피 30잔 밖에 못 팔았다.
경영이 어려웠다. 마침 그때 한 직원이 그의 카운터 위에 “‘험악한 인상’을 바꿔야 손님을 끌 수 있다”는 글과 함께 얼굴 관리를 잘 하라며 손거울을 두고 갔다. 이것이 그를 바꾸는 결정적인 모티브가 됐다. 충격으로 받아들인 그는 굳어진 얼굴 모습은 물론 말씨와 생각까지 바꿔야겠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해법 찾기에 몰입했다. 남의 탓만하는 생각을 바꿨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말과 표현하지 말고 앞에 있는 사람이 듣고 싶은 말과 표현을 해줘라’. 그는 그동안 시기와 질투, 비난 등 부정적으로 찌들었던 사고를 철저히 바꿔 나갔다. 이해하고 칭찬하고 용서하고 웃음 띤 얼굴로 언행을 바꿨다. 생각을 바꾸니 사람이 몰리고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화미주로 제2의 인생 구가 = 이런 마인드 컨트롤로 재무장한 그는 1986년 관리인 자격으로 미용실로 뛰어 들었다.
‘생각을 바꾸면 미래와 성공이 보인다’ 그의 철학은 고객 위주 경영이었다.
먼저 내부적으로 디자이너와 스테프간의 수평적 인간관계 유지로 상호 신뢰를 끌어냈다. 미용실은 기술과 서비스를 접목, 과거 잘못된 구태를 청산했다. 여기에다 찾아 가는 홍보로 고객을 끌어 들였다.
예감은 적중했다. 미용실에 발을 디딘지 3년 반만에 매출이 열 배까지 뛰면서 실내 평수도 60평에서 200평으로 늘렸다.
이즈음해서 프로 이미지와 미래의 포부가 담긴 의미의 이름도 바꿨다. ‘화미주’(和美洲). 1자당 200만원을 주고 작명했다. 당시의 고을 주(州)는 이제 대륙 주(洲)로 바꿨다.
이윽고 그에게 미용실을 인수, 원장이 되는 기회가 왔다. 원장은 그에게 끊임없는 고객관리와 기술, 서비스 개선 등 막중한 임무가 부여됐다.
그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고객관리를 위해 DM(Direct Mail) 발송, 시대의 흐름을 먼저 캐치해 한발짝 앞선 신기술 개발이 급선무였다. 97년엔 선진 일본 미용기술인 ‘매직스트레이트’, 이어 이듬해 ‘샤기커트’ 기술, 특히 독자적으로 개발한 ‘레드 영양스트레이트’ 기술은 ‘코팅퍼머’란 이름으로 전국에 날개 돋친 듯 번져 나갔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서오세요’.
고객들을 맞는 직원들의 옥소리가 높아지는 만큼 화미주의 유명세는 날을 달리하고 있다.
아카데미를 통한 고급 미용 인재 육성에 전력하고 있는 김영기 대표는 한국 미용업 경영의 지침서 ‘천만원의 약속’을 펴낸데 이어 미용의 국제화에 대비한 생활 미용영여 ‘웰컴투 미용 영어’를 자체 교육담당 직원이 500일 동안 각고 끝에 만들어 냈다.
이제 그의 목표는 광복동 입구에 매입한 160여 평에 본사를 건립하고 미국과 일본 중국에 ‘화미주’를 진출시키는 일이다.
화미주의 ‘주’를 대륙 ‘주’로 바꾼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미용업의 세계화’를 위해 투혼을 불사르고 있는 그의 부인 이선씨(44)씨와 2녀를 두고 있다. <부산=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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